[산업안전 칼럼 NO2]사고 나면 안전관리자 탓, 이게 맞는 구조인가
현장에서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연락을 받는 사람이 있다. 안전관리자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가장 먼저 질책을 받는 사람도 안전관리자다. "왜 이걸 몰랐냐", "왜 막지 못했냐"는 말이 쏟아진다. 어떤 사업장에서는 중대 재해 이후 안전관리자가 사직 압박을 받거나 징계를 받는다. 오래 일해온 안전관리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권한은 없는데 책임만 있다." 이 말이 과장인지 아닌지를 법령과 현실 두 가지 관점에서 따져봤다.

■ 법령이 규정하는 안전관리자의 역할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 제18조는 안전관리자의 직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그 핵심 키워드는 세 가지다. 보좌, 지원, 조언이다. 안전관리자는 사업주 또는 관리책임자를 보좌하고 관리감독자에게 지도·조언하는 역할을 맡는다. 법 어디에도 안전관리자가 사업장 안전의 최종 책임자라고 적혀 있지 않다.

위 인포그래픽은 법령상 책임 구조와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나란히 보여준다. 왼쪽을 보면 법령상 최종 책임자는 사업주·경영책임자다. 안전관리자의 역할은 보좌·지원·조언으로 명시되어 있고 처벌 주체도 사업주다. 오른쪽을 보면 현실은 다르다. 사고 발생 시 안전관리자가 먼저 질책받고, 서류가 미비하면 안전관리자 탓이 되며, 실질 권한은 없는 경우가 많고, 사고 후 징계·해고 사례까지 발생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제4조도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경영책임자에게 부과한다. 관리감독자는 작업 현장을 직접 지휘·관리하는 역할이고 안전관리자는 그것을 전문적 관점에서 지원한다. 형사처벌의 주체도 사업주다. 안전관리자는 법령상 처벌 주체가 아니다. 이것이 법이 설계한 구조다.
■ 현실에서 반복되는 4가지 패턴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사고가 난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목격되는 패턴이 있다.
- 안전관리자가 먼저 질책받는다. 사고 발생 직후 경영진이나 관리자가 가장 먼저 부르는 사람이 안전관리자다. "왜 그걸 몰랐냐", "왜 예방하지 못했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사업주나 관리감독자가 아니라 안전관리자에게 먼저 화살이 향한다. 법령이 정한 최종 책임자가 먼저 따져야 할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순서가 뒤바뀐다.
- 서류 미비의 책임이 안전관리자에게 집중된다. 위험성 평가가 부실했거나 교육일지 서명이 빠진 경우 그것이 안전관리자의 잘못으로 귀결된다. 그 서류를 검토하거나 승인해야 할 사람이 사업주라는 사실은 묻힌다. 안전보건관리규정 작성이 안전관리자의 업무라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 문서의 내용을 실행하는 것은 사업장 전체의 책임이다.
- 실질적 권한 없이 책임만 진다. 안전 예산을 결정하는 권한, 위험 작업을 중단시키는 권한, 설비 개선을 발주하는 권한은 사업주나 공장장에게 있다. 안전관리자는 건의하고 요청할 수 있을 뿐이다. 예산 요청이 묵살됐는데 그로 인해 사고가 났을 때도 안전관리자가 먼저 책임을 진다. 권한은 위에 있고 책임은 아래에 있는 구조다.
- 사고 이후 징계·해고 압박이 실제로 발생한다. 중대 재해 이후 안전관리자가 사직 압박을 받거나 징계를 받는 사례는 현장에서 드물지 않다. 법적으로는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안전관리자가 희생양이 되는 구조가 반복된다. 이 구조가 고착되면 유능한 안전관리자일수록 이 자리를 기피하게 된다.
■ 왜 이 구조가 고착됐는가
이 구조가 오래 유지된 이유는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 안전이 담당자의 업무로 좁혀지는 인식 때문이다. 안전은 안전관리자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경영진과 현장 모두에 깊이 박혀 있다. 안전이 전사적 경영 과제가 아니라 특정 담당자의 업무로 좁혀지면 사고의 책임도 그 담당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경영진이 안전 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서류에 서명만 하는 구조가 이 인식을 강화한다.
- 안전관리자 스스로 권한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용 불안 때문에 경영진의 눈치를 보거나 "어차피 말해도 안 된다"는 체념으로 권한 없이 책임을 떠안는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안전관리자가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구조는 바뀌지 않는다.
- 법적 책임 회피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도 있다. 사업주가 형사처벌을 받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안전 업무는 안전관리자에게 위임했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경우가 있다. 실질적 권한을 주지 않으면서 책임만 떠넘기는 형태다. 이것은 법이 의도한 구조가 아니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다.
■ 구조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해 안전관리자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사업장 차원의 시스템 변화가 필요하다.
- 작업 중지 권한의 실질화가 필요하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는 근로자의 작업 중지권을 보장하고 있고 안전관리자도 위험 상황에서 작업 중지를 권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권한이 현장에서 실제로 행사되려면 경영진의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안전관리자가 중지를 요청하면 즉시 따른다"는 원칙이 경영진 차원에서 명문화되어야 한다.
- 안전 예산 편성 과정에 안전관리자가 참여해야 한다. 필요한 설비 개선과 보호구 구입 예산을 안전관리자가 요청했는데 승인이 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면 그 책임은 안전관리자가 아니라 예산을 거부한 경영진에게 있다. 이 과정을 서면으로 남겨두는 것이 안전관리자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 사고 발생 시 책임 귀속 원칙을 내부 규정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안전관리자가 위험을 보고했는데 묵살됐다면 그 책임은 묵살한 사람에게 있다. 안전관리자가 권한 밖의 사항에 대해 책임을 지는 구조는 법령의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이 원칙을 안전보건관리규정에 명문화하고 사고 발생 시 내부 조사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 마치며 — 책임과 권한은 반드시 같이 가야 한다
안전관리자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면 권한도 줘야 한다. 위험 작업을 멈출 수 있는 권한, 예산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 경영진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상태에서 사고의 책임만 지는 구조는 공정하지 않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구조가 안전을 오히려 취약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책임만 무거운 자리에 유능한 사람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 안전관리자 이직률이 높고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안전관리자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구조는 결국 사업장 전체의 안전 수준을 낮춘다. 사고가 나면 안전관리자를 탓하기 전에 그 사람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있었는지, 위험을 보고했을 때 경영진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구조가 잘못됐는데 사람을 바꾼다고 해결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