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

사고 조사서에서 매번 빠지는 한 줄 — 관리적 원인

New_World_Magazine 2026. 4. 13. 13:40

이 글은 산업안전기사 자격을 보유하고 제조·건설·물류 등 다양한 업종 현장에서 10년 이상 안전관리 실무를 담당해온 필자의 직접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됩니다.

 

사고가 나면 조사서를 쓴다. 재해 발생 일시, 장소, 피해자 정보, 사고 경위. 그리고 원인. 10년 동안 수십 건의 사고 조사서를 작성하고 검토하면서 하나의 패턴을 발견했다. 원인 분석란은 대부분 같은 자리에서 멈춘다. "작업자 부주의", "안전 수칙 미준수", "보호구 미착용". 여기서 끝난다. 그 뒤에 있는 것, 그 작업자가 왜 부주의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안전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는지, 왜 보호구가 없었는지는 쓰지 않는다. 그 빠진 한 줄이 같은 사고를 반복하게 만든다.

사고 조사서에서 매번 빠지는 한 줄 — 관리적 원인

 


■ 사고조사서 원인 분석의 3가지 층위

사고 원인은 크게 세 가지 층위로 나눌 수 있다.

사고조사서 원인 분석의 3가지 층위

 

위 신문 칼럼 도식이 그 구조를 보여준다. 왼쪽의 인적 원인이 가장 먼저 기재되는 원인이고 가운데 설비적 원인이 두 번째, 오른쪽의 관리적 원인이 가장 자주 빠지는 핵심 원인이다.

  1. 인적 원인은 가장 쉽게 눈에 보이는 원인이다. 사고가 나면 피해자가 보이고 피해자의 행동이 보인다.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았다, 보호장갑을 끼지 않았다, 안전 통로를 이용하지 않았다. 이것들이 사고조사서 원인란에 먼저 채워진다. 이 원인들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만 쓰고 끝나면 진짜 원인은 찾지 못한 것이다.
  2. 설비적 원인은 절반 이상의 조사서에서 누락된다.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사실 뒤에 안전대를 걸 수 있는 구조물이 없었다는 설비적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보호장갑을 끼지 않았다는 사실 뒤에 작업에 맞는 보호장갑이 지급되지 않았다는 설비·자원의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이것까지 기재된 조사서는 상대적으로 낫다. 그런데 여기서도 멈추는 경우가 많다.
  3. 관리적 원인은 거의 항상 빠진다. 안전대 부착 설비가 없었다는 사실 뒤에 왜 없었는가를 파고들면 관리적 원인이 나온다. 예산이 반영되지 않았거나, 요청을 했지만 묵살됐거나, 위험성 평가에서 이 위험이 식별되지 않았거나, 관리감독자가 현장을 점검하지 않았거나. 이것들이 관리적 원인이다. 그리고 이것이 빠진 조사서는 재발 방지 대책이 표피적일 수밖에 없다.

■ 5-Why로 파고들면 반드시 나오는 것

관리적 원인이 빠지는 이유가 있다. 찾기 어려워서가 아니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관리적 원인은 대부분 경영진이나 관리자의 결정과 연결된다. 예산을 삭감한 결정, 위험 보고를 무시한 결정, 점검을 하지 않은 결정. 이것을 조사서에 쓰는 것은 조직 내부의 책임 소재를 건드리는 일이다.

그래서 사고조사서가 "작업자 부주의"에서 끝나는 것은 의도된 결과인 경우가 많다. 작업자에게 책임을 귀결시키면 경영진은 안전하다. 그리고 같은 사고는 반복된다.

5-Why로 파고들면 나오는 관리적 원인

위 5-Why 플로우는 내가 실제로 조사한 사고에서 관리적 원인을 찾아간 과정이다. 표면 원인인 "안전대 미착용"에서 시작해 5번의 질문을 반복하면 경영진의 안전 예산 편성 기준 부재라는 관리적 원인에 도달한다.

  1. 작업자가 안전대를 착용하지 않았다 → 왜?
  2. 안전대를 걸 곳이 없었다 → 왜?
  3. 부착 설비가 설치되지 않았다 → 왜?
  4. 설치 요청을 했지만 예산이 없다고 했다 → 왜?
  5. 안전 예산이 편성 단계에서 삭감됐다 → 왜?
  6. 경영진이 안전 예산 편성 기준이 없었다 → 핵심 원인

조사서에 "안전대 미착용"만 쓰면 대책은 "안전 교육 강화"가 된다. 5-Why까지 파고들어 "예산 편성 기준 부재"가 원인으로 나오면 대책은 "안전 예산 편성 기준 수립 및 승인 절차 마련"이 된다. 어느 쪽이 재발을 막는 대책인지는 명확하다.


■ 관리적 원인을 조사서에 쓰는 것이 어려운 이유

10년 동안 이 문제를 가장 많이 고민했다. 관리적 원인을 찾아도 그것을 조사서에 쓰기가 어려운 현실이 있다.

  1. 조직 내부 갈등을 만든다. 예산 삭감이 관리적 원인으로 기재되면 그 결정을 내린 경영진이 사고의 간접 원인자가 된다. 이것을 조사서에 명시하는 것은 안전관리자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쓰면 불편한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
  2. 처음부터 관리적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조사서 양식 자체가 인적 원인 중심으로 설계된 경우가 많다. 5-Why 분석을 의무화하는 조직은 많지 않다. 주어진 칸을 채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표면적 원인에서 멈추게 된다.
  3. 관리적 원인을 쓰면 사업장에 불리하다는 인식이 있다. 감독 시 사고조사서가 검토될 때 관리적 원인이 명시되어 있으면 경영진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이 쉬워진다는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의도적으로 관리적 원인을 누락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관리적 원인을 숨긴다고 법적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고가 반복되면 그때 더 큰 책임이 따라온다.

■ 관리적 원인을 제대로 쓴 조사서가 만드는 차이

관리적 원인까지 포함된 사고조사서는 재발 방지 대책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인적 원인만 기재됐을 때의 대책은 대부분 "교육 실시", "주의 강화", "보호구 착용 지도"다. 이 대책들은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된다. 같은 원인이 남아 있기 때문에 같은 사고가 반복된다.

관리적 원인까지 기재됐을 때의 대책은 구체적으로 바뀐다. "안전 예산 편성 기준 수립", "위험 보고 묵살 시 상위 결재 의무화", "관리감독자 순회 주기 규정화"처럼 시스템과 절차를 바꾸는 대책이 나온다. 이 대책들은 지속된다.


■ 마치며 — 불편한 원인을 쓰는 것이 진짜 조사다

사고조사서를 쓸 때 불편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여기서 끝낼 것인가, 한 줄 더 쓸 것인가. 그 한 줄이 관리적 원인이다. 불편하지만 그것을 쓰는 것이 진짜 사고 조사다.

관리적 원인을 찾는 것은 경영진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의 구멍을 찾는 것이다. 그 구멍을 메우지 않으면 누군가 또 그 구멍에 빠진다. 10년 동안 비슷한 유형의 사고가 반복되는 현장을 볼 때마다 조사서를 떠올렸다. 그 조사서에 관리적 원인이 빠져 있었을 것이다. 항상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