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업안전

TBM 10분으로 바꾸는 방법 — 실제로 써본 이야기

by New_World_Magazine 2026. 4. 27.

2018년 가을이었다. 경기도 이천의 물류창고. 새벽 6시 TBM 현장을 처음 봤을 때 할 말이 없었다.

담당자가 종이를 읽고 있었다. 근로자 열두 명은 각자 스마트폰을 보거나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3분도 안 걸렸다. 서명지가 돌았다. 다들 사인하고 현장으로 흩어졌다.

저게 TBM이었다.

그날 오후 사고가 났다. 지게차와 보행자 충돌. 다행히 경상이었다. 아침 TBM에서 지게차 동선 얘기는 없었다. 오늘 작업 내용도 없었다. 그냥 종이를 읽었다.

근데 TBM 일지에는 "실시"라고 찍혀 있었다.

 

TBM 10분으로 바꾸는 방법


■ TBM이 형식이 됐다는 신호

TBM이 형식화됐는지 아닌지는 10초면 알 수 있다.

시작할 때 근로자가 말을 하는지, 담당자 혼자 말하는지.

담당자가 말하면 형식이다. 근로자가 한 마디라도 하면 그건 살아있는 TBM이다. 이 기준 하나로 거의 다 보인다.

형식적TBM과 효과적 TBM 비교

위 비교표가 형식적 TBM과 효과적 TBM의 7가지 지표 차이다. 지금 현장의 TBM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항목 하나씩 체크해보면 된다. 형식적 TBM 항목이 3개 이상이라면 지금 당장 바꿔야 한다.


■ 10분 구성 — 순서가 전부다

10분이라는 시간이 짧아 보이지만 순서를 제대로 설계하면 충분하다. 아니, 오히려 짧아야 집중이 된다. 30분짜리 TBM이 10분짜리보다 효과적인 경우는 없었다.

효과적인 TBM 10분 구성

위 타임테이블이 내가 실제로 쓰는 10분 구성이다.

1) 0~1분 — 오늘 작업 확인. 첫 번째로 할 일은 오늘 어떤 작업이 있는지 한 줄로 정리하는 것이다. "오늘 3공정 금형 교체 있고 2공정은 정기점검입니다." 이것만으로 오늘 TBM이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 방향이 잡힌다. 오늘 작업을 모르면 TBM 내용도 허공에 뜬다.

2) 1~3분 — 어제 아차사고 공유. 전날 보고된 아차사고 1건을 2분 이내로 공유한다. 없으면 비슷한 업종의 최근 사례를 하나 가져온다. 안전보건공단 사고 사례에서 업종별 최신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이 2분이 근로자가 현실감 있는 위험을 느끼는 유일한 시간이다. 범용 수칙은 현실감이 없다.

3) 3~7분 — 오늘 핵심 위험 2가지. 오늘 작업과 직결된 위험 딱 2가지만 말한다. 10개를 말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2개만 말하면 2개는 기억한다. "금형 교체 시 반드시 에너지 차단 확인, 점검 구간 접근금지 테이프 설치." 이 정도면 충분하다.

4) 7~9분 — 근로자 질문 또는 발언. 이 2분이 TBM의 핵심이다. "오늘 작업하면서 조심해야 할 것 있는 분?" 이 질문을 반드시 던져야 한다. 그리고 기다려야 한다. 처음에는 침묵이 흐른다. 익숙하지 않아서다. 억지로 끌어내려 하지 않아도 된다. 매일 반복하면 2주 안에 누군가 먼저 말하기 시작한다. 그 순간이 TBM이 살아나는 시점이다.

5) 9~10분 — 보호구 확인 후 서명. 서명을 받는 게 아니라 확인을 먼저 한다. 안전화 끈이 제대로 묶여 있는지, 안전모를 제대로 쓰고 있는지. 눈으로 보고 나서 서명을 받는다. 서명이 목적이 되면 TBM은 끝난다.


■ 이 구성을 도입하면서 달라진 것

2019년 초, 경기도 안산의 금속 가공 공장에서 이 구성을 처음 도입했다.

처음 한 달은 어색했다. 7분에 "조심할 것 있는 분?" 물어보면 아무도 말 안 했다. 그냥 넘어갔다. 그래도 매일 물었다.

3주쯤 됐을 때 한 명이 말했다. "2공정 바닥에 기름 자국이 있는데 아직 안 치워졌어요." 그날 바로 확인하고 조치했다. 다음 날 TBM에서 공개했다. "어제 알려준 덕에 미끄럼 사고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주부터 발언이 늘기 시작했다.

한 달 후 아차사고 보고 건수가 월 1건에서 7건으로 늘었다. TBM 발언이 늘어난 것과 정확히 같은 시기였다. 우연이 아니다. TBM에서 말하기 시작한 사람이 아차사고도 보고하기 시작한 거다.


■ 관리감독자 TBM, 안전관리자가 개입하는 방법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별표4에 따르면 관리감독자는 작업 시작 전 안전점검을 해야 한다. TBM은 이 의무를 이행하는 핵심 수단이다. 관리감독자가 직접 진행할 때 효과가 가장 크다.

안전관리자가 직접 TBM을 진행하는 현장이 많은데 이건 바람직하지 않다. 안전관리자가 없는 날, 없는 시간에도 TBM이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안전관리자의 역할은 TBM을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감독자가 잘 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1. 관리감독자에게 10분 구성을 먼저 공유한다. 대본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알려주는 거다. 처음에는 같이 진행하다가 점차 넘긴다.
  2. TBM 일지 양식을 단순화한다. 오늘 작업, 공유한 아차사고, 핵심 위험 2가지, 근로자 발언 내용. 이 4가지만 적으면 된다. 관리감독자가 쉽게 채울 수 있어야 지속된다.
  3. TBM 내용을 안전관리자가 매주 검토한다. 범용 내용이 반복되는지, 근로자 발언란이 매번 비어있는지. 이걸 주 1회 확인하고 피드백을 준다.

■ 형식이 된 TBM보다 없는 TBM이 낫다 — 그래도 없애면 안 된다

솔직히 말하면 형식적인 TBM이 해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했다는 기록만 남기고 아무 효과도 없으니까. 차라리 없애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게 낫지 않나 싶었다.

근데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TBM이 형식이 됐다는 건 구조가 잘못된 거지 TBM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다. 구조를 바꾸면 살아난다. 그 경험을 여러 현장에서 봤다. 이천 물류창고도, 안산 금속 공장도, 부산 건설 현장도. 구조를 바꿨더니 다 달라졌다.

그래서 지금도 TBM이 형식화된 현장을 보면 없애자고 말하지 않는다. 7~9분에 이 질문 하나만 추가하자고 말한다. "오늘 조심해야 할 것 있는 분?" 거기서 시작하면 된다.